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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쟁이가 보는 아자방의 진실

사라와 구들쟁이 사라와 구들쟁이 | 2013/02/25 06:00 | 구들장에서 | 6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칠불사아자방지 (七佛寺亞字房址) 

지리산 칠불사에 있는 신라시대의 아(亞)자 방터이다.

 

 

<아자방> 출처 문화재청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재위 AD42∼199)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보옥선사를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한지 2년만에 모두 부처가 되었으므로 칠불사(七佛寺)라 이름지었다. 그 후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때 담공선사가 이중 온돌방을 지었는데 그 방 모양이 亞자와 같아 아자방이라 하였다. 1951년 화재로 불에 타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지금과 같이 새로 지었다.

아자방은 길이가 약 8m이고, 네 모서리의 높은 곳은 스님들이 좌선하는 곳이며 중앙의 낮은 곳은 불경을 읽는 곳으로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온돌은 만든 이래 1000년을 지내는 동안 한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는데, 불만 넣으면 상하온돌과 벽면까지 한달 동안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100년마다 한번씩 아궁이를 막고 물로 청소를 한다.

<문화재청 발췌>


범왕리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800m 지점에 있는 칠불사있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曇空和尙)이 아(亞)자형으로 길이 약 8m의 이중온돌방을 축조하였는데, 온돌의 구조특이하여 아궁이는 지게를 지고 들어갈 만큼 거대하고 불을 한번 때면 49일간이나 따뜻하였다고 한다.

<두산백과 발췌>

 

 

<아자방 내부> 출처 문화재청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成大中:1732∼1812)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온돌이 유행하게 된 것도 김자점(1623년 인조반정의 1등 공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방이 모두 마루여서 큰 병풍과 두꺼운 깔개로 한기와 습기를 막고 방 한두 칸만 온돌을 설치해서 노인이나 병자를 거처하게 하였다. 인조 때 도성의 네 산에 솔잎이 너무 쌓여 여러 차례 산불이 나서 임금이 근심하자, 김자점이 이에 오부(五部)의 집들에 명해 온돌을 설치하게 하자고 청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솔잎을 처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따뜻한 걸 좋아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명령을 따라 얼마 안 가서 온 나라가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온돌의 폐해가 심하니, 젊은 사람들이 따뜻한 데 거처하면 근육도 뼈대도 약해지며, 습지나 산이 모두 민머리가 되어 버려 장작과 숯이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는데도 해결책이 없다.”

성대중의 말처럼 온돌은 많은 연료를 소비하게 되어 산에 나무가 고갈되게 만들었다. 땔나무가 부족해져 양반들조차 추위에 떠는 경우도 생겼다. 19세기말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들은 조선의 산에 나무가 없음을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다.
<글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일부 발췌>

 

 

<구들쟁이의 주장>

위와 같이 칠불사의 아자방과 구들(온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담공선사가 이중 구들을 놓은 칠불사 아자방은 열효율성과 관리효율성에서 으뜸이된다.

불만 넣으면 상하온돌과 벽면까지 한달 동안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100년마다 한번씩 아궁이를 막고 물로 청소를 한다.<문화재청 발췌>

불을 한번 때면 49일간이나 따뜻하였다고 한다. <두산백과 발췌>

“불을 한번 지피면 49일간 온기를 유지하며, 어느 이는 석달 열흘 온기가 있다고 한다.”


허구를 다른 방향으로 보면 분명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타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쌓이게 마련, 아자방의 고래깊이 (약70㎝)는 무수한 세월속에 쌓인 타르의 양은 상당할 것이다. 아궁이의 나무가 함수율 낮은 즉 마른나무가 화력있게 탈때 타르가 타게되는데 일단 많이 쌓인 타르에 불이 붙으면 실로 대단하다. 왕겨더미가 타듯 은근히 오래 타는가하면, 아궁이로부터 고래, 개자리, 연도에 이르기까지 불기둥이 되어 화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초가산간이 잿더미가 되는 원인임)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타르청소를 하지않아 열손실과 나무연료의 낭비를 생각하면 실로 지혜롭지 못한 방법인 것이다. 옛날에는 해마다 연례행사로 추수를 마치고 개자리와 구들장을 해체 보수하며 살았지만 요즈음은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집의 수명이 다할때까지 고래청소를 하지않아도 되게끔 고래를 심지어 1M 이상 깊게 만들고 있는데, 이 방법 또한 옳은 방법이 아니다.

구들장에 타르가 들러붙기 시작하여 1년만에 평균 타르층은 5센치를 넘고, 단열이 취약한 부분은 10센치 이상도 들러붙는 야속한 타르(그을음)다. 이 타르가 들러붙어 있으면 우수한 단열재를 입혀놓은 상태가 된다. 아궁이에 불을 때도 방바닥이 처음과 틀리게 나무만 잡아먹는 하마처럼 변한다.
한 예로 부엌의 가마솥에 물이 더디게 끊으면 솥을 뒤집어놓고 호미로 타르(그을음)를 긁어 제거 후 솥을 다시 걸어 사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마치며...

사실 나 자신부터도 내가 주장하는 말에 과대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항상 근본은 진실이어야 한다. 그 얼마나 우리 구들문화가 최고라고 과대포장 하였던가?

그렀다면 그 좋은 구들방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가? 

 

 

물론 구들은 장,단점이 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일반인들이 평생에 한번 전원주택을 건축하면서 옛날의 정취로 방하나 정도 구들방을 만든다. 그러나 입주하고 한 해 겨울을 지내보고 대부분 방치한 아궁이가 대부분이다. 왜 이러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불편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아궁이 한 가득 군불을 지피고 자다보면 새벽에 불 지피러 영하의 날씨에 덜덜 떨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한다.

이처럼 많은 구들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장점이 많은 구들로 다시태어나야 구들이 진정 사랑받게 될 것이다.

 

 

사라와 구들쟁이의 알콩달콩 삶의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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