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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구들쟁이와 함께/해외 여행

마카오여행 비공개의 경건함

여러분은 마카오여행.....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도박의 도시 카지노가 연상이 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마카오를 조금 알고 계십니다.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두 분의 신학생이 유학을 하시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 마카오여행 비공개의 경건한 여행을 떠나봅시다.

 

 

한양에서 기초 신학공부를 마친 후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 사베리오), 3명의 신학생은 1836년 12월 조선을 떠나 만주와 요동을 거쳐서 1837년 6월 7일 목적지인 마카오에 무사히 도착합니다.(위키 백과 발췌)

 

 

 

성 안토니오 성당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세 개의 성당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 포르투갈인들의 결혼식이 많이 거행되어 중국인들이 ‘꽃들의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성 안토니오 성당 "십자가"

1638년 세워진 십자가가 성 안토니오 성당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당 주위에 아파트가 밀집 해 있어, 마카오의 인구 밀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건물들이 말해주는 듯 합니다.

 

 

성 안토니오 성당의 성전

이 곳에 한국의 가톨릭신자 및 여행자들이 지속적으로 오는 이유는 아마도 김대건 신부님의 일부 유해가 안치(비공개)되어 있으며 현재 춘천,원주교구의 신부님께서 파견되어 사목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왼쪽이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있고, 오른쪽  카노시안 수도회 창설 수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비공개로 일반인은 볼 수 없습니다.

안치된 성 김대건(안드레아)의 비공개되는 유해를 보니 온 몸으로 경건함의 전율이 흐릅니다.

 

 

현재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과 춘천교구 신부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좌측으로  김대건 안드레아, 가운데 주보성인 성 안토니오, 우측 카노시안 수도회 창설 수녀상 입니다.

 

이제 도보로 성 김대건(안드레아) 공원으로 갑니다.

 

 

 

오솔길을 따라 공원을 향하던 중 화사한 꽃나무 사이로 고층의 아파트가 보입니다.

김대건,최양업,최방제, 3명의 신학생이 거닐던 곳 입니다.

그때도 이 아름다운 꽃나무의 길을 거닐며 고향을 그리워 했을 3명의 신학생으로 돌아가 같이 이 길을 걸어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공원

한글로 쓰여진 기도문과 성 김대건 신부의 삶이 쓰여있어요.

 

공원 중앙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동상이 있고 공원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가 빙둘러 있습니다.  김대건 성인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성 요셉 신학교 성당

마카오 신학교에서의 신학생들의 공부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학문을 성실히 해야 함을 말하는 교회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중항쟁 등으로 공부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공부는 꾸준히 진행되었다.

신학생 시절 김대건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상당히 성숙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네로 황제가 로마제국을 통치하던 시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받았습니다. 집에서 사자를 키우던 어느 그리스도인도 잡혀갔고,

경기장에서 사자와 마주쳤습니다. 사람을 보고 달려들던 사자는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사자는 그리스도인이 키우던 사자였습니다.

자신을 키우던 주인을 보고 조용해진 것입니다. 사자도 제 주인을 알건만,

왜 사람들은 천주님을 못 알아보는 것일까요? (위키 백과 발췌)

 

 

성 요셉 신학교 성당의 성전

바로크 양식의 성 요셉 성당은 마카오에서 아름다운 교회로 손꼽힙니다. 1560년에 목조건물로 지어졌다가, 1801~1803년에 석조 건물로 재건축 되었습니다. 천장과 제대의 벽화가 그림으로 장식되어 화려함과 경건함을 자아냅니다. 아시아 지역의 선교 기반이 된 신학교는 일반인에게 비공개입니다.

 

 

 

 원죄없으신 성모제대

 

 

 

성 요셉 신학교 성당에서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 동영상 (재생 1분 27초)

 

 

 

 

성 마태오 리치

마테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태어났는데, 현재도 마체레타 대학교 본관에는 중국 사대부 모자를 쓴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1571년 로마 가톨릭교회에 입교하여 동양에 선교할 뜻을 품었다.

 

 

성 마태오 리치상과 고목아래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거닐고 있었을 조선의 유학생이 그려집니다.

 

  

이곳 역시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비공개 마카오여행의 한 코-스 입니다.

 

 

여기가 신학교 옛모습의 성전입니다. 

신학교에는 일반인이 들어 갈 수 없는 비공개라는 사실 다들 아시죠?

그러나 저희는 현지 사목하시는 신부님과 동행하여 3명의 신학생 발자취를 따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김대건은 마카오 신학교 시절 그를 가르친 교수들이 만약 신학생이 되지 않았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학문과 미술 모두 뛰어난 박식가이었던 것이다. 김대건,최양업,최방제 신학생이 공부하던 시절은 서양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로써 저항하는 동방 민중들간의 대립과 투쟁이 있던 시대였다.그래서 마카오에서의 민중운동으로 필리핀 롤롬베이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1842년 조선 잠입을 시도한 그는 의주 검문소의 검문이 심해서 실패했으며, 마카오의 민중 반란을 피해 청나라로 옮겨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발췌) 

 

 

여기가 신학생이 공부하던 신학교 내부입니다.

어~~ 놀라신 분 계시죠?

일반인은 물론 비공개이지만 특히 여성분들은 더욱더 못들어 가는 곳......

현지 신학교 교장님의 특별 배려로 신학생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었습니다. 

 

 

현 성 요셉 성당 신학교 교장과  가이드 봉사를 하시는 자매님

 

마카오에서 마지막 생을 마친 기독교 유럽인들을 위한 공동묘지에 성서변역가인 로버트 모리슨을 기념하기 위한 영국 성공회 성당입니다. 

 

 

 

최초의 중국어 성경과 영,중 사전을 발행한 로버트 모리슨을 포함해 19세기 제일의 무역업자로 손꼽히는 "조지 시러니" 또한 최방제(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학생등 160여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 묘역의 한쪽구석으로 두 곳의 이름 없는 묘가 있습니다.

이 두 곳의 어느묘에 최방제(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학생이 안치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추정할 뿐입니다.

유학 중에 병으로 1838년 별세

 

포스팅을 마치며.....

대서양 인도양 남중국해의 지구 반바퀴의 항해로 마카오에 들어온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은 가톨릭의 전교는 물론 서양의 앞선 과학기술,천문학,지리학의 가르침으로 포르투갈과 중국의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존하는 가운데, 가톨릭 전교를 위해 헌신한 결과 마카오가 가톨릭의 아시아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고, 3인의 신학생이 유학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최초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나셨습니다.

필자는 마카오여행에서 도박과 환락에 가려진 마카오의 역사와 가톨릭 전교에 힘쓴 선교사들과 3인의 신학생의 고귀한 희생과 경건함을  마카오여행을 통하여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http://www.gudlf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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