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해미산성의 역사 발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라말 궁예의 장인인 양길장군에 의해 축성되었다는 영원산성의 기록에 근거하여 이 시기에 해미산성,금두산성이 축성되었으라 추측할 뿐 입니다.
해미산성의 실제위치와 규모를 알아보기위해 구들쟁이는 해미산성을 돌며 다음지도에 GPS 포인트를 찍어 표기한 자료입니다.
빨간 점을 찍은 위치의 오차범위는 ±1m 이내로 예상합니다.
<가>해미산성의 북문
북쪽의 향로봉 중간위치의 금두산성과 연결된 주이동로이며 관설동으로 내려갑니다.
성문의 돌저구 역활을 한듯한 주춧돌에 원형의 홈이 파여있습니다.
<나>방석소나무
보호가치가 충분한 아름다운 방석소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건축물 터
평평한 산마루에 건축물의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라>해미성 남문
판부면 금대리로 오갈 수 있는 남문이 있던 자리로 추정됩니다.
해미성 남문쪽으로 큰바위돌을 이용한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지도상의 좌측 샘터
지도상의 우측 샘터
이 샘터는 약6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샘터가 두 곳에 있습니다. 샘터 주변으로 옹기굽는 가마터와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생각되며 실생활에 쓰였던 옹기그릇, 질그릇, 사기그릇, 기와등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해미산성을 돌아본 결과 샘이 흐르는 물줄기의 성벽은 대부분 거의 소실되었고 기초가 부실하고 석축의 뒷채우기가 안된 곳은 모두 홰손되어 있었어요.
곰바위봉(627m) 주위에 기와장으로 추정되는 토기 잔유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해미산성 내에는 주로 평평한 산마루를 형성하며 농사와 마을 형성으로 도자기굽는 가마터까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와 같이 비전문가가 보아도 오래된 유물 입니다. 문헌이나 문화재청의 자료들을 뒤져봐도 연구자료를 찿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재청의 주관으로 영원산성,해미산성,금두산성의 역사를 발굴하고 문화적가치를 고증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라와 구들쟁이의 알콩달콩 삶의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추천 꾸~~~욱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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